둘째날 . . . 23일 목요일.
7시 기상.
8시 출발입니다.
서울 본사에서 여기 지방 지사까지 온 이유는..
여기 일손이 부족해 정부에서 전라도 쪽을 당장 해결봐라..라는 얘기가 본사까지 들어가 저희가 온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서울만큼이면 만큼이지 결코 한가하진 않았습니다.
아침밥은 당연히 스킵.
친구와 저는 각각 어제 타고 온 차를 타고 뜯어집니다.
차 안.
"오늘은 총괄국 간다. 총괄국 어떤 곳인지 알지?"
총괄국이란 관내의 우체국의 중심의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하면 되겠네요.
관내 우체국의 인터넷 연결을 담당하는 서버도 총괄국에 있고..
뭐, 하여간 중심의 역할은 모두 총괄국 담당입니다.
단, 저와 관계된 것이라면..
PC교체가 10대 이상이 기본이라는 것이랄까요..;;
"내가 관내 우체국을 털고 올테니까 너가 그 동안 총괄국 PC를 교체하고 있어."
"네? 제가 혼자요?"
"어. 서류 양식도 줄테니까 직인도 다 받아놔."
...;;
이렇게해서 저는 이제껏 말그대로 눈팅(;;)으로만 배워온 서류 작성과 역시 눈틴으로 배운 컴퓨팅 실력으로 혼자서 총괄국 PC를 교체하게 됩니다.
다행히 교체 PC 대수는 총 8대.
교체할 PC를 확인하고 집중력을 높힙니다.
일의 효율성을 높히기 위해 최소 동선을 머리로 계산하고 시간 배분을 일 시작 전에 머리로 굴립니다.
교체 전 PC의 컴퓨터 이름과 IP를 적고 프린터 공유를 확인한뒤 PC당 설치되어 있는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우체국의 서버 담당자와 파일 백업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이 때 문제 발생.
서버 담당자가 교체해야 할 자리가 아닌 다른 사무실에 새 PC를 놓아달라고 요청합니다.
회사 일이 그렇듯 쉽게쉽게 내릴 결정이 아닙니다.
서류 작성에 PC 교체한 위치와 ip주소를 모두 적어야 하기 때문이죠.
안된다고 한사코 말했지만, 먹히질 않는군요. ;;
오히려 성을 냅니다.
뒤로 가서 과장님께 조용히 전화를 해서 일단 사무실에 놓으란 말씀을 들은 뒤 겨우 일단락됩니다.
두번째 문제 발생.
서버 담당자가 새 PC는 책상 위로 올려달라고 하는군요.
구형 PC는 책상 아래에 있습니다.
책상이..
그냥 책상이 아니고..
일명 독서실 책상입니다..;;
평소대로라면 구형 PC 빼낸 자리에 새 PC를 넣어 선을 그대로 꽂으면 되지만..(이 역시 아시다시피 구형 CRT 모니터일 경우 말이 좀 달라지긴 합니다.)
서버 담장자의 얘기라면 저 책상 뒤로 가서 선을 모두 위로 빼라는 얘기인데..
그 뒤 먼지들이..;;
전 이 날...
먼지로 뒤범벅이 된 저를 발견했습.. (...)
그 후 또 다시 세번째 문제 발생.
구형 PC의 교체와 관련해서 PC 하나당 서류 하나씩를 인쇄해야 하는데, 이는 회사 기밀입니다.
근데, 서버 담당자가 제가 컴퓨터를 만지고 있으면 옆에 와서 계속 보고 있더군요. ;;
난감한 상황입니다.
회사 기밀이어서 안되요..라고 말하면 큰일 납니다. ;;
일단 구형 PC를 빼냅니다.
인쇄를 꼭 해야 하지만, 일단 어쩌겠습니까..;;킁
그렇게 12시 전까지 3대를 교체합니다.
제 머리에 짜둔 계획에 차질이 생겨 또 일이 지연되는군요.
이 때!
우체국 점심 시간입니다.
집배원 아저씨들도 점심을 드시러 가시고, 서버 담당자도 갔습니다.
바로 기회.
구형 PC를 다시 연결해 서류 인쇄에 도전(?)합니다.
이미 아이피 충돌과 프린터 충돌이 일어나 감당이 되지 않지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능숙하게 인쇄에 성공합니다. (풋..;;)
미리 교체할 PC들도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미리 인쇄를 합니다.
서류는 보이지 않게 늘 갖고 다니는 가방에 고히 모셔둡니다.
덕분에 계획에 또 차질이 생겼군요.
아, 제 점심이요?
그런건 잊은지 오래..;;
어쨌든..
잠깐 숨을 가다듬고 계획했던 동선을 재검토합니다.
머리 속으로 동선을 다시 그린 뒤 바로 일을 시작합니다.
아, 이 때 연락을 다시 받아보니 과장님은 1층에서 창구 PC를 교체 중이라고 하십니다.
PC 2대와 순번 대기? 뭐, 하여간 그런거 교체라고 하시더군요.
과장님이 교체하시고 올라오시려면 2시에는 작업이 끝나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무리입니다. ;;킁
그래도 하는 데까지 해보죠.
일하는 중간중간 저와 떨어져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네트워크 공유가 안돼."
"프린터 공유는 어떻게 해?"
"이거 PDA가 안된데."
"웹브라우져는 뜨는데, 왜 우편창구 프로그램은 실행이 안되지?"
아..
좀 바쁘군요. ;;
독서실 책상 같은 책상 뒤로 가는 수모(?)를 수없이 겪으면서 가뜩이나 까만 제 청바지는 더 까맣게 되었습니다. ;;
점심을 드시고 오신 집배원 아저씨들이 안쓰러 보였는지..
"여기 선풍기라도 틀고 하시죠. 제가 틀어드릴게요."
...??
먼지가 후루룩~ ~ ~ ~
...;;
일이 참 재미있습니다..(-_ㅜ;;)
어쨌든, 달리고 달려서 경이로운 기록.
2시에 작업을 마칩니다.
서류 정리도 완벽합니다.
비록 몸은 까맣지만, 일은 무사히 끝마쳤군요.
..라고 하면 단순 노동일테죠.
제가 하는 일은 컴퓨터와 씨름하는 일입니다.
문제는 발생하고 발생합니다.
어쨌든 제가 맡은 일은 모두 끝이 났습니다.
과장님께서 올라오시고 기타 PDA 장비를 설치하시고 테스트하십니다.
이 PDA가 써보셨던 분들은 아시다시피 MS의 엑티브싱크라는 망할 프로그램 덕분에 늘 문제가 많습니다.
저는 그 동안 구형 PC들을 1층으로 나르고 성격답게 쓰레기 정리를 합니다.
그리고 과장님 PDA 세팅하시는 걸 지나가면서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머리에 저장합니다.
정리가 끝난 뒤 얼른 과장님 하시는 PC 옆의 PC에 앉아 똑같이 해결합니다.
컴퓨터 관련 일은 한번 뚫리면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 같더군요.
8대 PC의 PDA 세팅이 모두 끝이 납니다.
이미 제가 맡은 서류에 직인도 모두 찍혀있고, 싸인도 모두 받아두었습니다.
과장님의 손이 필요 없군요.
5시에 총괄국 우체국에서 나옵니다.
그레이스를 타고 다른 관내 우체국으로 달립니다.
과장님과 같이 PDA는 늘 말썽이라며 투덜대면서 길을 나섭니다.
동시에 과장님께서 8대를 어떻게 2시에 끝냈냐면서 신기해하십니다.
게다가 서류 정리를 보시니 더 신기해하십니다.
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관내 우체국에 도착합니다.
관내 우체국은 PC가 1~2대 정도입니다.
총괄국에 비하면 수월하지만..
창구에 있는 PC여서 우체국 고객분들이 오시면 머리 아파집니다.
게다가 총괄국의 LAN은 E1인데 반해 관내 우체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이 그만큼 느립니다.
저녁이요?
누가 출장 가면 하루 세끼 다 먹는다고 했던가요..(-_ㅡ;;)
관내 우체국 몇군데를 돕니다..
10시..
저와 과장님이 타고다닌 12인승 그레이스에는 구형 PC와 CRT 모니터, 기타 장비들이 트렁크에 가득합니다.
친구와 친구를 맡으신 과장님을 만납니다.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
이럴 땐 둔한게 효과가 있군요.
배고픈 건 잘 모르네요. (;;ㅋㅋ'')
그래도 몸은 피곤한지 과장님이 주신 소주 2잔에 머리가 살짝 어지럽군요. @@;;
친구와의 대화.
"넌 오늘 뭐했냐?"
"난 오늘 관내 우체국만 돌았어."
"그럼, 하루 종일 차만 탔겠네?"
"그렇지.ㅋㅋ 서울보다 편하더라야."
"난 총괄이었는데, 혼자 8대는 좀 많더라."
"그래도 서울보다 편하지 않아?"
"... 글쎄.."
저녁을 먹고 잠자리를 청할 모텔을 찾습니다.
과장님께서 모텔 창문만 봐도 잠을 자도 괜찮을 곳인지 안다고 하시는군요.
저는 모릅니다. ;;
(그래봐야 모텔에서 자는 건 고딩때 이후로 이번이 두번째니까요. ;;)
이왕 이렇게 된거 다음 날 목적지에서 잠자리를 찾아보기로 합니다.
내일 목적지는 해남, 강진.
먼저 강진으로 갑니다.
네비게이션이 참 좋습니다.
몇 분에 도착하는 지도 알려주고 과속으로 달리다가도 카메라 위치도 알려줍니다. (ㅡ_-)b
강진에 도착합니다.
헛;;
그야말로 촌구석입니다.
친구를 맡으신 과장님께서 출장 오기 전부터 해남, 해남 하시더니 결국엔 해남으로 갑니다.
해남에 도착합니다.
흠;;
그나마 조금 나은 촌구석입니다. ;;
모텔에 들어가고..
모두 씻고 잠자리를 청합니다.
저는 여전히 배가 살짝 아픕니다.
먼 곳에 오면 저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발동하나 봅니다.
제가 가장 마지막으로 씻습니다.
불은 꺼져 있고..
TV소리는 적막하게 시를 낭송해주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습니다.
다들 잠자리에 이미 들어있습니다.
지칠만큼 지쳤기 때문이지요.
저도 지쳤습니다.
하지만, 음악이 너무도 듣고 팠습니다.
일을 시작한지 2주일이 되었지만..
가장 안타까운 건 음악 들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었죠.
출장 와서는 그 정도가 더 심했네요.
제 귀여운 A3000을 꺼냅니다.
이날 첫 재생곡은 QUEEN의 My Life Has Been Saved..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몸소 느껴보기 위해..
아버지께서도 그만 두라고 하셨던 일을..
그만 두지 않고 아르바이트 주제에 출장을 왔습니다.
쉽지 않네요..
쉽지 않아요.
아니, 힘들군요.
"그래도 나중에 사회 나가면 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싶을거다."
"고등학교 때가 제일 쉬운거야."
"돈버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어."
힘들긴 하지만..
흠.. 제 고등학교 세월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힘들긴 하나 힘들지 않습니다.
저도 이제 스르르 잠에 듭니다.
세번째 이야기는 오늘 밤에...@@;;
. . .
[까만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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