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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 1.0 글 모음/Talk

[잡담] 거북이의 첫 사회생활 이야기..그 여섯번째. <6부>




. . .



6. 아버지.

(이번 글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저희 아버지는 현재 저번주 4일에 걸친 전라도 출장에 이어서 오늘은 일정을 알 수 없는 강원도 출장을 가셨습니다.
저번주 출장은 아들인 제가 먼저 출장을 가고 뒤이어서 출장을 가셨더랬죠.
하지만, 일의 성격은 다릅니다.

(아, 모르겠다. 그냥 본문 시작.)


(본문)

아르바이트 첫날.
부서 사무실을 처음으로 들어갔을 때.

 "이사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십니다."

직원들은 저희 아버지께 인사를 했습니다.
오랜만이라고 하는 말은 저희 아버지께서 이 부서에 계시다가 지금은 다른 부서로 옮기셨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죠.

이사님?
뭐, 집에서 어머니께 항상 아버지의 직책을 여쭤볼 때마다 들어왔던 말인지라 익숙한 말이었습니다.
어머니께 "그게 뭐에요?"라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물었지만, 늘 돌아오는 답은 "사장 다음이야."일 뿐이었죠.

첫날 처음으로 외근을 나가며 다마스를 탔을 때.
과장님께서는..

 "어떻게 일을 하게 된거에요? 이사님이 사회 생활 경험해보라고 시킨거죠?"

 "아, 그런 것도 있고, 제가 하겠다고 하기도 했고요."


둘째날 역시 다마스를 탔을 때, 다른 과장님께서는..

 "다른 알바생보다 더 열심히 해야하는 거 알죠?"

 "네? 열심히 해야하는 건 알지만.."

 "이사님 이름이 걸려있잖아요. 아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원들이 아버지를 보는 눈이 다를 거에요."

 ...;;

 "이미 잘 알고 있을 테지만, 우리 쪽 부서 사람들은 이사님과 같이 일해봐서 이사님을 잘 알고 있어요.
 저는 이사님 존경하고요. 아드님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사님의 명예가 달라지는 겁니다."

 ...!!!


몇일째 되는 날 일을 마치고 2인용 다마스에 신입사원과 과장님과 내가 낑겨 타고 본사로 가던 날. ;;
(2인용에 어떻게 3명이 탔는지는 묻지 마세요..;;)

신입사원 왈,
 "과장님, 저 이번에 차 계약했습니다. 현대 아이써티 아시죠?"

 "어. 알지."

거북이 왈,
 "해치백 스타일 좋아하시나봐요."

 "아, 네. 해치백이 이쁘잖아요."

 "그 차 발표회에서 임수정이 나왔는데, 임수정이 옆에 있으니 무슨 카니발만하게 보이더라구요."

 (웃음)

과장님 왈,
 "너 차 좀 좋아하는구나. 나도 차 좀 좋아해. 내 뉴SM3가 튜닝 좀 되어있어. 초반 길들이기도 잘 해서 연비가 튼튼하다."

 "와. 그 초반 길들이기가 지긋지긋하셨을텐데, 대단하시네요. 연비 많이 좋나요?"

(중략)

과장님 왈,
 "아버지는 차타고 출퇴근 하시지?"

 "아뇨. 저희 아버지 9500번 타시는데요."

 "집에 차 없어?"

 "아뇨. 있는데 거의 안써요."

 "차가 있는데 이사님이 버스로 출퇴근하신다고?"

 "네. 기름값 아깝잖아요."

 "차는 뭔데? 소나타?"

 "아뇨. 귀여운 베르나요. 소나타 같은건 기름 먹어서 안되요."

 "이사님 정도면 차로 출퇴근 하실텐데 의외네."

 ...??



. . .



앞의 소감문에서 이미 썼었듯이 저는 회사 체험이 처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업무 환경이라 해봐야 초딩시절에 사진으로 봤던 아버지의 책상뿐이었죠.
이번에 일을 하면서 아, 우리 아버지의 지위가 이 정도시구나. 라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다른 부서였기 때문에 정확히..라고 하면 얼토당토한 말일지 모르나 어쨌든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고픈 말은 이게 아니고..


(진짜 본문)
저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 하시는 일이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어머니를 쫓아다니며 아버지 하는 일이 무어냐고 몇일이고 물어봤던 어릴 적 기억도 있었죠.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의 직업을 써봐라..라고 하면 늘 그곳에는..

'컴퓨터 수리직' 혹은 '컴퓨터 관련직', '컴퓨터 기술직'

이라는 문구를 채울 뿐이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이 되어 드디어 어머니께 조금 더 구체적인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삼성 그룹의 컴퓨터를 설치 및 유지보수 하는 직업이야."

이 답을 듣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날이 지나고 보니..

저게 무슨 말이지? . . . (-_ㅡ;;)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하루하루가 지났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더 구체적인 답을 얻을 수 있을거라 기대했죠.
그러나 그 답을 듣기 전.
아버지께서는 서류상으로만 명예 퇴직이라는 명분으로 퇴직을 하시게 됩니다.
집안의 기둥은 그래도 다행히 뿌리가 뽑히지 않을 정도만 흔들렸죠.
저는 결국 답을 듣지 못한채 크게 됩니다.

머리는 하루하루 커가고..
컴퓨터가 무엇인지를 차츰차츰 알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하셨던 일은 무엇이었을까..라는 궁금증은 여전했죠.


2007년 8월 11일.
아버지와 동행했던 을왕리 해수욕장 여행에서..
아버지는 그동안 아들에게 하지 않으셨던 인생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버지는 저의 궁금증을 반 정도 해결해주셨죠.


이번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저는 인터넷의 사진으로만 보던 '서버'라고 불리는 컴퓨터를..
실제 눈으로 관찰하게 됩니다.
관공서의 서버란..
음..

큰 컴퓨터였습니다.
(앗, 이게 아닌데;;)

사실 PC 교체에 일이 바뻐 볼 시간이 없었으나 나중에 통신실에 몰래 들어가 서버를 요리조리 구경하고 나왔습니다. ;;

서버라는 건 굉장했습니다.
책장 같은 것이 있고 그 사이사이 데스크탑에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형 본체가 층마다 자리잡고 있었고.
알 수 없는 LED들은 서로 바쁘게 깜빡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우체국 총괄국의 서버는 더욱이 굉장했습니다.
알 수 없는 수많은 LAN선들은 관내의 각 우체국을 하나로 이어주는 중심체 역할을 했었고.
각 LAN선에는 포스트잇으로 뭐라뭐라 쓰여있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하드랙도 볼 수 있었고.
제 발이 밟고 있는 전선들은 수없이도 많았죠.

말그대로..
 "이게 뭐여?"
였습니다..;;

그런 초대형 컴퓨터에 이어진 모니터라고는 초라한 15인치 CRT 모니터 몇대였습니다만..
알 수 없는 명령어들이 수 없이 지나가고 있었고.
너무 궁금해서 엔터 한번이라도 치고 싶었으나.
쳤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군침만 삼켰습니다.

그러한 대단한 서버를 관리하기 위해 그 작지만 큰 방에는 제 방에도 없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고..;;흑
그 에어컨을 실시간으로 관리하기 위해 옆에는 또 다른 컴퓨터가 자리잡아 에어컨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허걱;;)
서버의 옆에는 정전시 모든 데이터를 순간 저장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임시용 배터리랄까요..
(UPS라고 하던가요?)
하여간 그 큰 덩어리 같은 제 몸보다도 훨씬 큰 배터리가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무식하게 큰 컴퓨터였습니다만.
모니터를 보면 이건 뭐 요즘 대세인 와이드 LCD도 아니고.. 일 수 있지만.
그 모니터에 지나가는 명령어를 보니 이 컴퓨터는 그냥 컴퓨터가 아니구나..라는 걸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껏 말로만 서버 서버 했었지 사실 실제로 그렇게 가까이에서 서버를 본 것은 처음이었으니까요.

통신실에서 슬그머니 나오는 그 느낌은 싸늘했습니다. (에어컨 바람때문이 아니라;;)
대체 이걸 뭐 어쩌란건지..

그 때 순간 떠오른 몇일 전 과장님의 말씀.

 "우리는 PC 담당이고 아버지는 서버를 담당하시는 거야."

 ...!!

통신실에서 빠져 나와 다시 제 일로 돌아가 PC를 설치했습니다.
만지작 만지작..
늘 보던 윈도우즈가 부팅되고 바탕화면의 내 컴퓨터 오른쪽 버튼을 눌러 속성을 누릅니다.
그 자세에서 정지.

대체 우리 아버지는 저 서버를 뭐 어쩐다는 것일까?

나는 이 초라한 PC나 끄적거릴 뿐인데?

모니터에서 수많은 명령어가 지나가듯이..
내 머리 속엔 수많은 생각들이..

그 다음날.
과장님 왈,

 "요즘 관공서들이 대전으로 이전하고 있죠?
 그 이전 작업을 하는데 서버 이전을 아버지가 담당하고 계신거에요.
 총담당자이시니까 아버지가 이전하지 마라. 라고 하시면 이전 안하는거에요. (웃음)"

아.. 아버지께서 그런 일을 하셨었군..


. . .


이번 일을 통해서 가장 명쾌한 답을 얻어낸 것중 하나이며 가장 뿌듯한 점 중 하나입니다.
아버지의 지위를 깨닫고..
아버지의 일이 무엇인지를 알다..

더불어 더 뿌듯한 점이 있다면..
남들에게 그냥 그럴듯한 꿈이 있어 보였던 저는..
사실 구체적인 꿈을 찾지 못해 답답해 하던 처지였습니다.
남들에겐 그저 꿈이 있어 전자공학을 왔다고 했지만, 그냥 막연한 꿈이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죠.
또한, 저는 컴퓨터가 하고 싶었으나 이내 겁을 먹고 컴퓨터 공학을 택하지 않았으니 더 답답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저희 아버지는 또 한번 무언의 답을 내려주셨네요.

어린 시절..
남들보다 구체적인 꿈을 갖었다고 좋아하던 저였습니다.
그것의 배경에도 저희 아버지는 무언의 답을 주셨었죠.

커버린 지금..
그냥 막연한 꿈을 갖은 것은 아닌가..라는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좀 더 구체적인 꿈을 찾기 위해 시간을 쏟고 있던 저였습니다.
그리고 답을 찾았네요.
이번의 배경에도 저희 아버지는 무언의 답을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조금만 더 일찍 알려주셨으면 더 좋았을테지만..
큰 깨달음을 얻거라..라는 뜻이셨다고 믿겠습니다.

솔직히는 조금 늦게 알려주신 아버지가 조금 야속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욕심 많은 제가 깨달아야 할 것은 많기에 그 큰 뜻을 이해하기에는 어린 나이였기에 알려주지 않으셨던 것이겠죠.
지금이라도 알려주셔서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너무 성급했음을 깨달았으니 그것도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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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의 첫 사회생활 소감문 여섯번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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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거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