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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 1.0 글 모음/Talk

[잡담] 거북이의 첫 사회생활 이야기..그 여덟번째. <8부>




. . .



(들어가기 전에)
아침부터 머리가 무거워 몸이 고단하군요..
그래도 원래 수요일까지 마무리하려던 글인데, 너무 미루어진 듯 해서 무리해서라도 끄적거려 봅니다...


8. 순수함. 그것의 의미.

컴퓨터를 좋아하는 나는 일찍이 중학교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컴퓨터 기술자가 된다며 동네방네 죄다 알리고 다녔었다.
(하지만, 나도 꿈을 갖던 어린 아이였기에 파일럿이나 작가, 영화 평론가..등을 꿈꾸기도 했었다.)
내 꿈에 그리 반대를 하셨던 건 아니지만, 전자와 기계를 좋아하는 나를 어머니는 일찍이 좋아하지 않으셨었고, 이후에는 아버지께서도 좋아하지 않으셨다.
(아, 물론 내가 이후에 본업에는 충실하지 않고 기기에 의존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도 이유는 있었다.)

나는 네트라는 바다를 홀로 항해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많은 정보들을 머리에 쌓아가게 된다.
그 중 장래희망에 대한 얘기를 꼽으라면..

 "지금은 좋아하더라도 나중에 그것의 뒷면을 보면 실망을 금치 못하고 내가 왜 꿈을 갖었었나..에 대해 회의적이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이었다.

특히 컴퓨터에 관한 직업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짜고 치는 듯 하나같이 위와 같은 말을 하곤 했다.
이쯤되니 중간에 "꿈을 향해 돌진하세요." 같은 말은 오히려 가식적으로 들리기도 하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컴퓨터를 예전보다 더 알게 되어 꿈을 더 확고히 해야 했으나 겁이 많았던 나는.
또한, 네트라는 바다에서 볼 것이라곤 겉핥기라도 거의 다 보게된 나는 꿈을 살짝 돌려서 전자공학과를 선택한다.

그리고 주변에 얘기는 못하였지만, 나는 늘 찜찜한 구석이 있었고, 몽롱한 꿈을 가진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주변에 고민을 얘기할 사람을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이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몇번이고 들었던 얘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전과를 하도록 해."
 "전자공학과나 컴공이나 마찬가지야."
 "이 일을 나중에도 하고 싶니?"

심지어..

 "문과가 좋은 것 같아."

(...)

이 쪽 일의 시스템이 그러하듯 막말로 그들은 일에 찌들어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일을 시작한지 일주일째 되던 그 날.
나 자신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한다.

첫번째 과장님.
거북이 왈,
 "과장님, 과장님은 과 어디나오셨어요?"

 "나 전자공학과 나왔지."

 "가고싶으셔서 간 거였어요?"

 "음.. 그 땐 컴퓨터 하면 먹고 살 수는 있다고 해서 갔지. 먹고 살 수는 있는데 이게 뭐니.."

 "흠.. 그럼, 컴퓨터를 좋아하고 가신 건 아니시네요?"

 "컴퓨터를 안좋아했던 건 아니지.
 그 뭐냐..지금은 이름도 잘 기억이 안나는데..
 그 때 당시는 어셈블리나 코볼을 배웠지.
 참 재미있게 했었어.
 흥미로웠지.
 내가 프로그래밍을 해서 프로그램 만든 게 모니터에 처음 떴던 순간은 지금도 기억난다."

 "아.. 좋아하셨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하시는건가요?"

 "뭐, 그런가.. 솔직히 지금은 그 때 좋아했었던 건가..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건 왜 물어보냐?"

 "아뇨, 그냥.. 제가 컴퓨터를 좋아하는데, 현실을 보면 좋아하지 않게 된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후.. 그냥 과를 바꾸는 게 속 편할꺼다.
 일 해보니까 그런 게 느껴지지 않니?
 문과 가서 속 편하게 앉아서 일 해.
 어차피 이 쪽은 머리 써도 막노동이랑 다를 게 없어."


두번째 과장님.
(이 과장님은 이 부서의 프로그래밍을 담당하시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거북이 왈,
 "과장님, 과장님은 과 어디나오셨어요?"

 "나? 글쎄.."

 ...??

 "처음에 이 회사를 아르바이트 식으로 들어왔어.
 박스 잘 까다가 PC 설치법을 배워서 용케 여기까지 올라온 거지."

 "아, 그럼 컴퓨터를 좋아하셔서 이 쪽에 종사하시게 된건 아니구요?"

 "음..글쎄..
 컴퓨터를 안좋아했던 건 아냐.
 그 처음에 컴퓨터 사고 명령어 치니까 플로피 디스크에서 드르륵 거리면서 읽어드리는 그 느낌..
 와.. 첫느낌은 굉장했지.
 그 후에 게임도 하고 워드프로세서도 해보고, 퍼즐 게임도 만들어보고 정말 좋아라했다."

 "와.. 프로그램도 직접 몇개 만드셨었나봐요."

 "그 땐 컴퓨터 다루려면 그 정돈 해야했었으니까.
 아, 내가 그러다가 친구집을 갔는데, 친구 녀석이 컴퓨터를 산거야.
 알라딘이었던가 뭐였던가.
 근데 컬러화면인데다가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 하드디스크라는 게 들어가있는거야. (웃음)
 와.. 그 때 느낌 정말 신기했지."

 "아, 맞아요. 들어보니 그 당시엔 하드디스크라는 게 굉장히 귀했더랬죠. 그 땐 몇십메가 몇백메가였죠?"

 "그렇지. 처음에 딱 컴퓨터를 켜는데 명령어도 치지 않았는데, 지 알아서 수루룩 글자들이 넘어가는거야.
 난 무슨 인공지능인가했지.
 그리고는 폴더트리가 쫙 하고 열리는데, 와~하고 탄성이 절로 나오더라고."

 "정말 신기했겠네요.
 M으로 실행하면 그렇게 되던건가요?
 지금의 윈도우즈 비스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웃음)"

 "당연하지!
 아, 근데 나는 M을 안썼었어.
 어쨌든, 그래서 내가 형을 졸라서 컴퓨터를 새로 사.
 그 때가 아마 고등학교 때였지.
 그리곤 이것저것 안해본 게 없지.
 그 때 컴퓨터 좀 아려고 공부 많이 했었다. (웃음)"

 "윈도우즈는 언제 나와요? (웃음)"

 "아, 그리곤 내가 군대를 가.
 그 전에 윈도우 3.1이 나오긴 하는데, 별로 안쓰였지."

 "집에 윈도우즈 3.1 CD부터 95, 98 다 있는데. ㅎㅎ"

 "그게 아직도 있냐?
 뭐, 하여간 군대 나왔는데, 사람들이 다 윈도우를 쓰고 있데?
 와.. 그 마우스 움직이는 게 나는 어찌나 어색하던지.
 그 때 나는 더블 클릭도 못했었다니까? (웃음)"

 "어색할 만도 하죠. ㅎㅎ
 그 때쯤이면 98이었나요? 97년 쯤 되었을 테니까.. 95였나.."

 "시간 계산 빠르네.
 95였어. 신기했지. 물론 에러도 많았지만."

 "블루 스크린은 최악이죠."

 "그래도 우린 명령어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어.
 에러 나는거야 그냥 껐다 켜면 끝이잖아?
 지금도 무슨 문제 생기면 전화로 껐다 켜세요..라고 하면 해결되는데뭐."

 "그치만..
 아, 그럼 컴퓨터 많이 좋아하셨네요뭐."

 "ㅎㅎ 그건 좋아한 것도 아냐.
 그 땐 다들 그랬다니까.
 내가 좋아했던 건 그 이후지.
 나는 내 주변 사람들보단 웹을 좀 일찍 접했어."

 "웹을 일찍 접하다뇨?"

 "내가 제대하고나서 윈도우에 익숙해진 다음 전화선 연결해서 PC통신을 많이 했었거든.
 근데 나는 웹에 더 눈독을 들였어.
 그러면서 XXX를 익히고 XXX를 익혀서 꽤나 공부를 많이 했지.
 관련 책도 정말 많이 샀었다." - (XXX는 제가 기억이 안나서;;)

 "아, 저도 개인 홈페이지는 만들었었어요.
 크~ 저도 PC통신은 별로 맛이 안났죠.
 다음 첫 화면이 지금도 생생해요. 풋~"

 "너 몇살때인데?"

 "초등학교 4학년때요."

 "그게 기억이 나냐?
 아, 그 때면 정말 다음 초기때네.
 그리고선 CGI 공부도 하고 서버 프로그래밍도 이것저것 하다가 웹호스팅 업체도 가려서 구한 다음 개인 홈페이지도 열었었지."

 "개인 홈페이지 붐이 2000년도 내외에서 일어났으니까 그럼 그 때 쯤이시겠네요?"

 "아니, 나는 너가 다음을 처음 보기 전부터 책을 봤었다가 96년인가 97년쯤에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어.
 너 해봤으니까 알겠네.
 너 CGI라는 거 알지?
 당시 게시판은 지금의 싸이 방명록처럼 글씨체나 색깔 못바꿨었잖아."

 "아, 네. 전 그 땐 어려워서 그냥 빌려서 썼었지만요."

 "나는 그 때 게시판에서 CGI 이용해서 지금의 게시판처럼 자동으로 태그 입력되게 만들었었어.
 CGI 커뮤니티에 올려서 한때 유명세 타기도 했고.
 개인 홈페이지에 방명록을 그렇게 열어두었더니 소스 달라고 메일도 자주 오더라고."

 "홋! 그게 97년이었다고요?"

 "그래서 내가 그래도 주변 사람들보단 웹을 일찍 접했다는거야.
 더 일찍 접한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적어도 주변 사람들보단."

 "제가 보기엔 정말 빠른데요?"

(중략)



내가 나 자신에게 준 과제를 열심히 수행해 네분의 과장님께 여쭤본 결과..
그 분들 모두 한때 컴퓨터를 좋아하셨던 분들이더군요.
지금의 저보다 많이 좋아했으면 좋아했지 싫어하지는 않으셨었으니까요.
이 오묘한 느낌..
문과로 가라는 표현은 문과가 쉽다..라는 표현이 아니라 결국엔 몸고생을 해야하는 공대생의 비애를 과장시키신 것이겠죠. ;;킁
그 뒤에 이어진 대화.


A 과장님: "난 이러고 집에 가면 PC는 쳐다보지도 않아."

B 과장님: "난 주말에도 PC 켜보지도 않아. 지긋지긋한데 그걸 왜켜?"

C 부장님: "풋.. 난 우리집 PC 고장난지 몇달이 넘었어. 아들내미가 고장났다고 몇번을 징징댔는데, 귀찮기도 하고 영~ 보기 싫더라고."

A 과장님: "아, 저도 아들 녀석이 컴퓨터 이상하다고 하면 그냥 껐다 켜~ 라고 해요. 하루 종일 컴퓨터만 봤는데, 이젠 전원버튼만 봐도 지긋지긋하죠. 안지긋지긋하면 그게 이상한거죠. (웃음)"

B 과장님: "난 얼마전에 TV 고장났는데, 그것도 정말 지긋지긋하더라. 오래된거라 기사가 뜸들이길래 기사가 뒷면 뜯었을 때 내가 후딱 해버렸지. 근데, 그 뒤론 TV도 켜기 싫어. 거참.."

거북이: ...


그 주에 저는 친구 컴퓨터를 포맷시켜주기 위해 발로 뛰는 A/S를 갔고..
그 다음날은 배터리 없는 제 노트북과 씨름을 했고..
일이 끝나는 그 날 그 날 그래도 아쉬워서 PC를 켜고 블로그와 미니홈피를 확인했더랬죠..

순수함..

순수하게..

문득 고3 급훈이었던 '처음처럼'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그 뒤에 이어진 말들..
순수하게 좋아하다..

그 말이 그렇게 필요한 말인지 사실 알 수 없었고, 오히려 들을 때마다 화가 났던게 사실인데..

무언가를 좋아한다..라는 건 사실 쉬운 것이 아니죠.

아, 그만하고..

그 순수함을 영원히 이어가길..
꿈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좋아하는 것에 순수함이 묻어나길..



. . .



까만거북이의 첫 사회생활 소감문 여덟번째 끝.



PS. 머리가 무겁긴 한가보군요.
존칭 썼다가 안썼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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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거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