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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 1.0 글 모음/Ver.2.0

[음악] QUEEN - I Can Hear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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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법 강화로 음악 재생 플레이어를 삭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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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and music by phil spector, ellie greenwich and jeff barry

This is the way I always dreamed it would be
The way that it is,o-oh,when you are holding me
I never had a love of my own
Maybe thats why when were all alone
I can hear music
I can hear music
Sounds of the city baby seem to disappear
Oh well I can hear music
Sweet sweet music
When ever you touch me baby
Whenever youre near
Loving you it keeps me satisfied
And I cant explain,oh no,the way Im feeling inside
You look at me we kiss and then
I close my eyes and here it comes again
I can hear music
I can hear music
Sounds of the city baby seem to disappear
Oh well I can hear music
Sweet sweet music
When ever you touch me baby
Whenever youre near
I can hear music
Sweet sweet music
When ever you touch me baby
Whenever youre near
I can hear music
Sweet sweet music
When ever you touch me baby
Whenever youre near


(출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lyricsfreak.com )



원래 자우림의 '새'를 갖고 포스팅하려고 했는데, 앞의 글들을 쓰고 나니 머리가 너무 아파 어제 마음 먹었던 퀸의 이 음악을 포스팅한다.

이 곡 역시 프레디 머큐리의 작사, 작곡은 아니다.

하지만, 20대 후반의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를 하늘을 찌른다.
취향이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 나에게 우울한 음악을 듣는 것은 취향이다..라고 했더랬는데, 사실 나는 그 점에 절대 반대한다.
내 취향은 원래 고음 성향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냥 고음 성향이 아니고, 여자 목소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주로 듣는 음악에 남자가 부르는 음악은 크라잉넛과 프레디, 송골매를 제외하곤 없다.
사실 위 가수들도 고등학교가 지나고 나서야 음악에 의지하면서 생긴 가수들이고, 그 이전에는 이수영과 김윤아만을 좋아했고, 초딩 시절엔 SES를 좋아했고, 박화요비와 헤이 같은 가수들을 좋아했다.
자우림에 대한 노래 역시 많은 얘기가 하고 싶지만, 여기서 끝.

솔직히 말해 프레디의 목소리는 75년 이후의 목소리를 나는 더 높이 치는 편이지만, 데뷔하기 전의 프레디 머큐리 역시 한에 맺힌 듯한 음을 들려주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든다.


가사들은 심금을 울리는 구성으로, 마음을 저리게 한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하는 저 목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안쓰럽게 만든다.

노래와는 조금 다른 소리지만, 나는 프레디 머큐리를 그 누구보다도 으뜸으로 치는 사람이다.
아픔을 지닌채 누군가를 안아준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힘들다..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래서 나는 프레디 머큐리가 경이롭다.
기록에 의하면 프레디 머큐리는 1975년에 자신이 죽을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채 아픔을 지닌채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였고, 언제 죽음이 다가오지 못하는 일생에서 그는 남은 일생을 받쳐 목소리를 내었다.
그런 그는 힘들다고 외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동정의 눈길과 응원의 눈길을 보내며 명곡들을 들려주었다.
가사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웃으면서 노래를 하는 프레디를 보면 우울에 빠져 있다가도 헤어나올 길이 보인다.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알기에 나는 일어날 수 있다.

한..
그 한에 맺혀 프레디 머큐리는 소리를 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런 목소리에서 나온 가사와 목소리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 곡은 명곡이 되었다.

자신이 죽을 91년에서 5년을 남긴 채 86년 그는 퀸 역사상 최고의 공연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울려퍼진 곡들은 퀸 팬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그 곳에서 불린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을 좋아하는 이들의 마음 한구석 깊숙히 들어갔다.

아, 웸블리 공연에 대한 건 나중에 끄적거릴 것이니 이 쯤에서 끝.


I Can Hear Music.

고2 때 나는 내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라는 것에 너무나 큰 회의감을 느꼈다.
난 중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고흐가 왜 자신의 귀를 잘랐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고2가 되서야 나는 그것이 인지되었다.
하루에도 수십번 눈을 빼고 싶었고, 귀는 듣기 싫었다.

중3 때도 잠깐의 방황기 덕분에 세상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 쉬는 시간마다 이어폰을 귀에 걸었지만, 후에 내가 바보였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후 mp3p를 집에 두고 다녔더랬다.
하지만, 고등학교의 나는 아니었다.
정말 눈과 귀가 왜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모질지 못한 나는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나는 그 무엇보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했다.
귀..
귀가 필요했다.
그리고 가사가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했다.

그 뿐이었다.
눈과 귀가 있는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다.
음악을 듣고 보기 위해.

음악뿐이 의지할 곳이 없었던 나에게는 절실했던 그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가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얘기였지만, 제목을 보고 또다시 감사함을 느낀다.
멀정한 눈과 귀가 있기에 나는 음악을 고르고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감사하다.
그렇지 않았으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이 쯤에서 마무리.


[까만거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