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 꼴이 된 후 만신창이가 된 채 대낮이 꼴까닥 지나갔다.
두통약을 하나 쥔 채 잠이 들었고, 배 속은 휘엉청 파도가 불었다.
남들이 술에 빠지듯이 나는 퀸의 음악에 빠져 허우적 대다가 용케 힘을 내었다.
체력은 얼마 전부터 떨어지고 있는 것을 인식했다.
수업 도중.
아니, 시험이었지;;
시험 도중.
이건 아닌데;;
아, 시험 보기 조금 전에..;;;;
시험 보기 바로 전에 아는 형이 내 어깨를 주무르며 나에게 말을 했다.
"재성이 컨디션 안좋니?"
허걱.. 화들짝 놀라며, 아니요! 라고 대답했더랬다.
그리고 크게 웃었다.
이런..
수업이 끝.. (...)
수업인지 시험인지 감이 없는듯 하다..;;
시험이 끝나고, 형에게 오늘은 버스 타고 가겠노라고 했다.
형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태연하게 음악 들으려구요~ 라고 대답했더랬다.
말도 안되는 변명인걸 알았지만, 형은 알았다면서 혼자 걷고 싶구나..라고 말했더랬다.
더 이상 얼굴을 보였다간 나도 모르게 말이 나갈까싶어 등을 돌렸다.
버스 타고 간다는 변명도 그런 이유였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던 도중 친구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 아침엔 전화를 못 받았노라고 하고 기차 타고 잘 갔느냐고 물었다.
그럴싸한 용건만 주고 받고 냉큼 끊었다.
그리고 높디 높은 학교 건물을 뒤돌아 바라보고 다시 앞을 보고 걸었다.
길 건너에 정류장이 있었고, 횡단 보도에 섰다.
횡단 보도를 건넌 후 오른쪽으로 가야 정류장이 위치해 있다.
그런데 문득.
집으로 걸어가볼까?
..라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더랬다.
머리와 몸은 지쳤는데, 저런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러면서 또 자기 합리화를 시작했다.
가는 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버스 노선은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거리에 비례하여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걸어가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에는 하교길에 혼자 걷는 시간이 꽤 있었더랬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않았다.
요즘 머리가 아픈 이유는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런 고로 한번쯤 무리한 걸음을 할 필요도 있다.
라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냥 말도 안되는 이유를 붙여가며 나는 횡단보도의 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걷기를 시작했다.
머리가 아팠으나 아프지 않다고 주문을 외웠고, 몸도 힘들었으나 어제는 많이 잤으니 괜찮다고 주문을 외웠다.
출발에 인증샷을 찍으려고 했으나 카메라를 별로 꺼내고 싶지도 않았고, 이러다가 버스 타면 흐지부지 아닌가 싶어서 그냥 걸었다.
내가 주로 타던 버스의 노선을 따라 걸었고, 많이도 걸었다.
버스 노선을 따라 걸었던만큼 차들은 굉장히 많았다.
큰 길 따라 노선이 나는 법이므로 차들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내가 주로 타는 버스는 경인 고속도로의 옆도로를 따라서.. 즉 발꿈치를 세우면 경인 고속도로가 보인다.
그런 고로 빠르게 지나가는 차 소리들을 생생하게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 소리들은 무서웠으며.
버스 운전사들은 앞에 승용차들이 없으면 무슨 자신이 레이서라도 된 듯이 육중한 버스를 몰고 어림 눈짓으로 봐도 시속 60은 넘어보였으며.
그 옆을 지나가는 덩치 작은 나는 자연스레 겁을 먹게 되었다.
차들이 많은 덕분에 매연도 많았던 것 같다.
특히 경인 고속도로 덕분에 더 했던 것만 같다.
맛, 냄새 이 두가지에는 특히 둔한 내가 매연 냄새를 맡았을 정도니 그 정도는 감을 잡을만 했다.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갈 때에는 정말 무서웠다.
하지만, 차들이 무섭다란 것이 아니고, 세상의 차가움을 맛보았다.
하지만, 잘 알고 있기에 이제는 어깨를 편다.
그러다보니 머리가 아프지 않고 있었다.
그냥 아프지 않은 것인지는 사실 헷갈린다.
아마 어른들은 나에게 세상은 더 차가우니 너 아픈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가르치려는 데에 목적이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역시 나란 존재는 훨씬 더 고통스러움을 맛봐야지만이 아, 지금 정신 차릴 때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듯 하다.
이런 걸 맷집이 좋아진다..라고 표현하는가?
이런 걸 일찌감치 알게 된 나는 나이가 수두룩하게 먹은 어른들이 왜 힘들다고 하지 않는지 이유를 안다.
바로 맷집이 생겨서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넘길만한 재주가 생겼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나란 녀석도 결국에는 지구의 먼지에 불과할 뿐이로니 아파해봐야 쓸모가 없다란 생각이 들었더랬다.
하지만, 이미 잘 알고 있었더랬는데, 역시 더 힘든 것을 체험해봐야 하는 듯 하다.
그래서 길을 걷다가 재미난 상상을 해보았다.
아, 방금 과자 먹다가 죽는 줄 알았다. (-> 잡소리;;)
어찌되었건 그렇게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이미 내가 타던 버스는 반년 정도 탔으니 징하게도 탔고, 게다가 서울 지리는 모른다쳐도 인천 지리는 그럴싸하게 알았던 터였고..
더더욱이 게다가 네이버로 버스의 노선을 지도에서 확인해본 경험이 있으며 구글 어스에서 위성 사진으로 확인해보기도 하였다.
그런 고로 내가 지금 지도 상에서 어디를 걷고 있는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근데, 오히려 그게 문제였다.
머리 속으로 지도를 계속 떠올려봐도 당췌 그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생각보다 멀구나..라는 생각을 계속 하며 걸었다.
하긴, 멀긴 멀다.
버스를 타면 평균 40분 거리.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와 학교에서 버스 정류장까지의 거리를 합해 총 1시간 쯤 걸리는 거리를 걷고 있으니 나도 참 바보같은 도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승용차를 이용해서 고속도로를 타도 30분이 걸리는 거리이다.
에고, 이런.. (괜히 생각했다..;;)
걸으면서 시간을 체크했다.
1시간 쯤 걸었을까.
조금 피곤함이 왔다.
아, 뭐 벌써 힘들다고 그러냐..라는 생각으로 그냥 걸었다.
그래도 가다가 환타 하나 사들고 계속 걸었다.
왜 환타인지는 모르겠는데, 내 습성 상 그냥 눈에 제일 먼저 보이는 음료수를 고르는 습성때문에 그런 듯 하다.
오늘따라 가방은 방해가 된다.
이 가방 덕분에 내 삶은 참 재미있었더랬지만, 역시 한쪽으로 매는 가방은 장시간 이동에는 도움을 주지 않는다.
약 2시간 쯤 걸었을까.
이제, 지친다.
중간중간 차에는 한번쯤 기대고 싶었는데, 나를 다지자싶어서 기대지도 않고 서서 다리를 접었다 폈다하면서 달래곤 했더랬다.
가방이 없었으면 좀 편했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맸다가 저렇게 맸다가 아주 쇼를 했다. ;;
그래서 횡단 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다같이 무단 횡단을 해서 앉아 있는 나는 좀 당황스럽더랬다..(-_ㅡ;;)
그리고 10초도 안되어서 일어났는데, 휴대폰이 울려댔다.
고3 친구 녀석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부탁한 mp3p는 어떻게 되었느냐는 전화였다.
전자 기기에 빠진 몇년간 누군가에게 전자 제품에 대한 요구를 받은 적이 없던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친구가 부탁한 mp3p를 구하는 일인데, 요즘 장터를 눈여겨 보지 않아서 그냥 시험 기간이라고 둘러댔다.
참 변명거리 좋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들은 친구 녀석 목소리는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 좀 나아지는 법이다.
이래서 나는 문자 메세지의 무료화가 아니라 문자 메세지 폐지를 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있다. (좀 심한가;;)
이 친구 녀석.
얼마 전, 항상 전화하는 건 나라면서 웃으면서 한소리 하니, 그래서 전화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저러나 어떠한가.
목소리 들었으면 땡이지.
긴 통화는 하지 않고, 끊었다.
이제 슬슬 속도가 붙는다.
사실 이 전부터 카메라를 종종 꺼내왔다.
꺼내기 쉽지 않았는데, 조금 정상으로 돌아왔나보다.
그런데, 참 재미있다.
평지를 걷는 것인데, 좀 전부터 산을 올라가고 있다라는 느낌이 선명했다.
발목은 산을 올라갈 때의 정점에 달았을 때처럼 뼈가 갈아져 어긋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냥 아픈 것인데, 어쨌든 끊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속도는 점점 붙어온다.
긴장이 되는건지 이만큼 힘든 걸 알았으니 내 머리 속은 시원해지는 건지 모를 일이다.
그러던 중 또 한번 다른 친구 녀석의 전화를 받았더랬다.
이번에는 프린터 문제.
요로코롬 용건을 얘기하고 집으로 가서 얘기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집으로 걸어가고 있다라는 얘기를 하면 왜냐고 묻는 친구에게 그냥이라는 거짓말을 해야 할까봐 말하지 않았다.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가식적이다..라는 말을 했더랬지만, 나는 믿지 아니했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수긍하는 면이 있어서 나는 마음이 아팠더랬다.
머리와 몸이 아프고 피곤하나 형들과 학교 반친구들 앞에서 웃어보였더랬으며.
심지어 친구들의 전화에서도 나는 박장대소를 했었더랬다.
정작 나는 쓰러져 가는 몸뚱이를 간신히 부여잡으면서 말이다.
선의의 거짓말이 있다고 하지만, 가식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도 곰곰히 생각하는 것들 중 하나이지만, 당췌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 친구 녀석이 그냥 재성이 하는대로 하면 된다..라고 했더랬지만, 사실 그 모호함은 여전하다.
걷는 속도는 붙었으나 몸의 피곤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의식이 육체를 지배할 뿐이지, 육체는 육체 나름대로의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잠깐 공원에서 앉았다.
걸어오는 동안 머리는 한결 나아졌다.
아, 근데 왠걸?
앉으니 다시 머리가 아파왔다.
뭐, 이런 게 다 있나..
그래도 잠시 다리를 쉬게 했다가 냉큼 일어나 계속 또 걸었다.
힘을 좀 넣어야 할 필요도 있었고, 허기가 지기도 해서 슈퍼에 들어가 밀키스와 호빵 하나를 사들었다.
이제 겨울이 슬슬 오기는 하나보다.
앉으려고 하다가 그냥 걸어가면서 먹기로 하고 계속 걸었다.
잠시 안식처를 찾는다는 것은 안이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고로 계속 걸어서 제대로 된 고통을 좀 겪어봐야 한다.
호빵은 달콤했다.
으..
힘들었다.
고지가 보이고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의 다와서 경로를 수정했다.
정류장 끝까지 가는 것이었으나 살짝만 방향을 바꿔서 마트로 향했다.
얼마 전 태워먹은 냄비 사는 것이 이제서야 생각났다.
마트로 얼른 들어갔으나 다리가 너무 아파왔다.
누군가 밖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집만한 것이 없다고 했더랬다.
근데, 나는 집이 아닌 내 방만 생각난다.
집은 그닥 생각나지 않는데, 방은 너무도 생각났다.
마트를 한 바퀴 쑥 둘러보고 잽싸게 나왔다.
결국 냄비는 사지 못했는데, 다리가 좀 아팠다.
방으로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다.
엘레베이터에서 주저 앉았지만, 조금은 뿌듯했다.
다리가 아팠고, 발목이 아팠고, 어깨가 조금 아팠다. (가방 이런;;)
문을 열었는데, 거실 불은 켜져 있고, 집에는 누군가 있는 기척이다.
그렇지, 나래다.
하지만, 소리가 없는 걸 보니 자고 있나보다.
내일이 모의고사인데, 책상에 머리 박고 자고 있다.
깨워서 제 정신이 아닌 나래를 침대에 눕혔다.
다리가 아파서 나도 그 옆에 그냥 눕고 싶었다.
내 방 가서 잠깐 누웠다가 씻어야지..라고 생각하며 나래방의 불을 끄고 나왔는데, 부엌의 설거지 거리가 보였다.
아, 이런..
엄마가 오시기 전에 해야 엄마에게 한소리 듣지 않는다.
친구의 프린터 해결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야 했지만, 나는 투덜거리며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거실을 보며 나도 좀 쉬고 싶구만..이라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봤다.
친구의 프린터를 해결해주었고, 그 때 어무니께서 오셨다.
오자마자 요즘 왜 그렇게 막 사느냐고 잘 좀 하라고 하셨더랬다.
네..라고 대답하고 방에 들어갔다.
요즘 말이 참 많다.
그 동안 못했던 말들을 마구 쏟아내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말이 참 많다.
글 쓰기 중독이 된건지 참았던 말들을 막 풀어내는 건지..
일단 이 글은 포스팅.
피곤할만도 한데, 글에 대한 나의 집념은 대단하다.
[까만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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