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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의 포스팅.




무언의 포스팅.
제목이 없는 듯한 포스팅은 그럴싸하다.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 녀석.
짧았던 이틀이었으나 친구 녀석 말따라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녀석이 이 포스팅을 볼 것이 뻔하지만, 내 멋대로 블로그 포스팅을 진행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침대에는 어무니가 놀라실만큼 머리 카락이 빠지는 것을 발견한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사실 놀랄 필요도 없다.

나는 태생에 유전 따라 흰 머리카락이 많았다.
오히려 연세가 드실수록 흰머리가 줄어드시는 아버지와는 달리 내 머리에는 고등학교 세월이 지난 뒤 흰머리는 급격히 증가했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언젠가 눈썹에서 흰 눈썹이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난 아침에도 거울을 조신하게 안보는 생활 태도 덕분에 내가 발견하지 못하고 그 당시 하교길을 같이 한 친구 녀석이 발견했더랬다.
그 이후로 흰 눈썹이 났더랬는데, 세번째 흰눈썹 때 알게 되었다.
급격히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흰머리를 넘어서 흰눈썹이 자라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누군가에게 그 얘기를 하자 괜한 이유 붙인다, 자아 의식이다..라는 뜻의 답을 들었으나..
나도 처음에는 상당한 의심을 했더랬다.

뭐야? 왜 눈썹에서 흰눈썹이 나와? 어허.. 그럴 수가 있나..;;

그러나 그러한 눈썹을 대략 5번째 발견하게 되자 고도의 스트레스 = 흰 눈썹 이라는 공식이 점점 명확해져 갔다.

얼마전, 나의 흰눈썹을 발견한 또 다른 친구 녀석은 아주 놀라며 거북이는 신이 아닐까? 라고 했더랬다.
난 집에 와서 거울을 보며 흰눈썹을 떼어버리고, 스트레스를 그럴싸하게 받은 내 자신에게 한스러움을 느꼈더랬다.
올해에 아마 세번째 흰눈썹일지라..
두번째였던가..

그런데, 얼마 전 더욱 특이한 것을 발견했더랬다.
역시 내 몸에서 난 것인데 발견하지 못하고 나래가 내 볼에서 살짝 나온 흰 털을 발견했다. ;;
나래도 신기해하고 나도 놀라 기절할 뻔했다.
대체 어디까지 스트레스를 받은게냐!!



부산에서 올라온 녀석을 버스에 태우고 돌아오던 중.
난 애써 잘 웃던 얼굴을 이 몇 일간은 잘 펴지 못했더랬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속으로 되새겼으며 집에서는 쉴 틈없이 집안일을 했더랬고, 전자 제품에 대한 얘기를 했더랬고, 집을 나설땐 늘 그랬듯이 자이리톨 껌을 씹어댔다.

그 녀석 고맙게도 무슨 일이 있더랬냐고 가던 길에 다시 한번 전화했더랬지만, 단지 나는 그 편안함에 전화를 끊은 뒤 나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레쓰비를 한 캔 또 샀다.

기침이 섞인 구역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벌써 4년째 하고 이 기침질인지 구역질인지 알 수 없는 이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심해져만 간다.
레쓰비를 버리고 구역질은 점점 심해졌다.
난 집에 빨리 걸어갔다.
공원을 지나면서 내 눈에선 눈물이 나오려 했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문제인 것인가.
난 고등학교 세월을 아주 개떡같이 보내버렸고, 그 속에서 말못할 아픔을 지녀왔다.
하지만, 그 아픔들은 다른 아이들이었다면 더더욱이 아파했을 뻔했지만, 나는 그 아픔들은 오히려 잘도 넘기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아픔들보다 따뜻한 품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더욱 한스러웠다.
어른들의 그 차가움 속에서 어렸던 나는 한스러움을 느꼈다.
고2 때는 나의 의지체인 부모님을 대신해서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했고, 뒤돌아서서는 나 혼자 울어야 했더랬다.
말하지 못하는 아픔을 지니고 누군가를 안아준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것이구나..라는 것을 징하게 느꼈던 한 해였다.
고3이 되어 주변의 상황이 모두 좋아졌고, 나도 평안을 되찾으려 했다.
하지만, 어른들중 그 누구도 나에게 고2 때 떨어진 성적 얘기만을 해댔고, 그 누군가도 그 이유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나를 잘 안다면서 이 녀석도 방황하다 그랬겠지 라는 말들 뿐이었다.
부모님은 친척들의 얼굴을 어떻게 보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부모님 앞에서 얼굴을 들을 수 없었지만, 그 한스러움을 가슴에 맺혀왔다.
나는 자우림의 새를 들으며 나 자신을 죽였다.
어른들이 나를 잘 안다라고만 하지 않았더라도 난 한스럽지 않았을 터인데, 그들은 한사코 나를 잘 안다고만 대답했다.
그리고는 너 고2 때 성적 이렇게 떨어져서 어디 가겠노냐고 그야말로 따지기만 했다.
그렇지 않아도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더더욱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가 어른에 대한 비판을 할 때에 역시 어른들은 그 이유에 대해 묻지 않았다.
아이였던 나에게 한이라는 것을 만든 그들은 오히려 나보다 아는 것이 없다.
그래, 난 여전히 부모님 앞에서 얼굴을 들을 수 없다.
이런 생각들에 지쳐 나는 요 근래에 되는 것이 일체 없고, 냄비를 태우고 책은 찢어먹었으며 기어코 자동차는 부숴먹었다.
그래서 얼굴을 들을 수 없지만, 난 얼굴을 내 가슴에 파묻고 그들에게 말하지 못한 한스러움을 말하고 있다.
바보라는 것을 나 스스로도 제대로 알고 있으나 어찌 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그나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나는 정신 병자는 되지 않았다.
단지 우리나라 수많은 문학들에 내재되어 있는 한이라는 것이 맺혀있을 뿐이다.
내가 힘들 때 퀸의 음악을 들으며 힘을 내려고 하는 것은 단지 나는 죽음 앞에 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힘들 때 발랄한 음악을 들으며 힘을 낸다고 하지만, 나에겐 그런 허풍보다는 오히려 인간 최대의 고민 덩어리인 죽음 앞에 서야만이 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미련한 것이라고 하지 말라.
그것이 미련한 것이 아니고 나만의 방법을 찾은 것 뿐일지어니.
하지만, 나 역시 이것이 미련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찌할 방법을 알 수 없다.


헛구역질을 계속 해대며 나는 빠른 걸음으로 공원을 빠져나갔다.
고3 때 그러했듯이 나는 눈으로 눈물을 삼켰다.
나약해지지 않아야 하기에 나는 눈물을 삼켰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 나의 등을 토닥거려주길 바랬다.
제발 부탁이니 나의 한스러움을 풀어줄 어른이 나에게 등을 토닥거려 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어른에 대한 한을 갖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러면서 자책과 자악하며 글을 쓰고 싶지 않고 가슴을 부여잡고 싶지 않다.
퀸의 음악도 이제 지겹고 김윤아의 목소리도 지겹다.
나는 강요라는 것을 싫어하지만, 지금 억지로라도 산울림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달랜다.
벗어난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말하건데, 고등학교 때의 기억이 지옥같아서가 아니다.
어른들에게 실망감을 갖은 것이, 한스러움을 갖은 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로 인해 차가워질 수 밖에 없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구역질을 끝내고 싶단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따뜻함을 건네 주고 등을 토닥거려 주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단 한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어른들이 내 등을 토닥거려주길 바라고 있고, 내 울음을 받아주길 바란다.
이 바보는 늘 센 척을 하면서 이런 바람을 마음 한 구석에 꿍하게 박아두고 있다.

계속된 구역질에 가슴이 아파와 가슴을 부여잡고 공원을 빠져나왔다.
기어코 눈물이 나오려 하는 것을 참고 또 참았다가 4차선 도로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차들은 라이트를 켜고 잘도 달렸다.
저렇게 달리는 차들을 보고 내 눈물은 쏙 들어가고 말았다.
무서운 세상 앞에 나약하지 않아야된다고 습관처럼 자책을 하였더랬다.
버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만의 세상 사는 법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가슴을 부여잡았다.
목구멍은 무언가 가득 차 답답했다.
그 상황에 누군가 나에게 아는 척을 했다면 쓰러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아무도 있지 않았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빠른 걸음을 재촉했지만, 결코 빠르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내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걸음을 늦추었다.
그리고 지금 집에 들어가면 얼굴에 우울하다고 써 있을 것이 뻔하디 뻔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나 자신을 달래던 아파트 사이의 벤치에 몸을 기대려 갔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그 시간대에는 담배 피는 고등학생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난 그래서 고등학교 때 어딘가를 서성이다가 12시가 넘어서야 그곳에 가서 단 하나인 등불을 보며 무언의 기도를 했더랬다.
제발 그 상황 좀 어떻게 해주면 안되겠노라고 외쳐댔다.
영화에서 그러하듯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면 안되겠느냐고 외쳐댔더랬다.
담배 피는 고등학생들의 핑계를 대며 나는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엘레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 표정 관리를 했더랬다.
한숨을 몇번이나 내쉰 뒤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이냐며 엘레베이터로 향했다.
아팠으나 아프지 않노라고 마음에 되새겼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방으로 냉큼 들어왔다.
침대에 앉았다가 다시 벌떡 일어서 화장실 앞에 있는 빨래 거리들을 세탁기에 갖다 두었다.
침대의 이부자리를 단정하지 않지만, 단정하게 하고 앉았다.
아무래도 어떻게 해야할지 방도를 알 수가 없다.
되는 것이 없는 요즘, 당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 때, 나래는 인쇄할 거리가 있다면서 작년도 10월 모의고사의 답안의 한 페이지를 인쇄했다.
프린터의 드럼이 고장인 터라 아까 대낮에도 한두시간을 고쳐댔는데, 잘 해결되지는 않았더랬다.
요로코롬 인쇄는 했으나 역시 부분적으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나래는 질문이 있다면서 지금해도 되냐는 물음에 하라고 답했다.
표정 하나하나를 점검하고 나래의 물리 문제를 마치 선생님이 된 듯이 가르쳐 주었다.
나래의 손가락 막대기에는 친구들이 써준 메세지들이 보인다.
나래 빨리 나! 화이팅! 아프지 마!
늘 그랬듯이 가르쳐주었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아 문제를 또 읽고 또 읽는다.
운동량 보존의 법칙을 이용하는 의외로 간단한 문제였지만, 답답했다.
두 문제를 답해주니 고맙다라면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어른이 되는 길이 이렇게도 머냐고 반문 하고 싶지만, 먼 것인지 내가 다른 길을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단지 제대로 된 울음을 하고 싶은 것 뿐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약해져서는 안되기에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지 누군가가 등을 토닥거려 주었으면..하는 바람이 있나보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물어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 수 없다며 한탄을 하곤 한다.

나 역시 그 모든 사람의 일종일 뿐이다.
겨우 그 중 하나일뿐이다.
어찌 감히 내 자신이 아파하고 힘들어하는가.
죽음 앞에 서보았던 내 자신이 이렇게 나약해질 수 있는가?

프레디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며 경건함을 되찾는다.
나약해져서는 절대 되지 않는다.
눈물은 눈으로 삼키며 눈물샘을 제거하라.


[까만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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