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모든 것을 담지 못한다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런 이유로 시 뿐만 아니라 나는 모든 글이 함축적이라는 것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내가 여기저기 남긴 글들이 쌓여가고 있다.
이 블로그도 그런 글들을 정리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었지만, 역겹게도 따로 노는 느낌이 강하다.
글을 위해 다이어리를 구입했고, 구닥다리 HPC 조나다와 모디아를 구입해 워드 머신을 골랐다.
난 어디에든지 글을 써서 붙일 수 있는 포스트잇을 굉장히 좋아하고, 메모지를 준다고 하면 거부는 커녕 두 손으로 받는다.
얼마 전 일이었다.
미분 수업 때 일이었는데, 늘 무거운 무언가가 떠 다니는 것만 같아 답답한 내 머리에서 깔끔하게 정리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구성이고 문법이고 뭐고 조잡했으나 분명 글로써 작성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를 대비해 그 작은 대학교 책상에도 항상 다이어리를 두지만, 다이어리는 너무 작았다.
그렇다고 조나다를 꺼내기엔 수업 시간의 눈치가 보였더랬다.
에라, 모르겠다싶어 수업 필기를 하던 노트를 찢어 날리는 글씨로 무언가를 마구 써댔다.
노트 한 페이지의 얼마를 채우지 않고 글은 마무리 지어졌다.
다이어리에 썼어도 될 걸..이라면서 노트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수업을 들었더랬다.
기억력이 그러하듯 까먹고 있다가 오늘 학교를 가서 노트의 뒤를 보고 떠올랐다.
아, 이거!
내가 읽으면서도 피식거리며 그 페이지를 찢어 가방에 넣었다.
나 혼자 웃음을 참을 수 없었지만, 모른 척 했다.
매개체..
매개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그냥 바닥에 떨어져 있는 종이라도, 그것이 껌종이라도 그 안에 들어가는 글이 중요하다라는 것을 무심코 떠올렸다.
그 글에 들어가는 내용, 문체, 감정 등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라는 것을 내 웃음 뒤에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역시 무언가 아쉬웠다.
나는 어리석어서 글이라는 것을 쓰면 마음의 한구석, 머리의 한구석에 있는 그 무언가의 것들이.
한꺼풀씩 벗겨져서 결국에는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될 것이라 믿었다.
그리하여 다이어리를 고를 때에도 고심, 고심했더랬고, 현재 HPC를 고를 때에도 고심고심이었다.
심지어 디지털적인 글을 작성할 때엔 워드 포맷에 대해서도 고심했더랬다.
doc 파일이 좋을까? bak 파일을 만들 수 있는 doc 파일을 생성할까? 아니면 워드 2007의 docx? 아니면 텍스트 기반의 txt? 내가 아는 태그를 이용해 글을 좀 꾸며볼까싶어서 html?
하지만, 그런 겉치레는 모두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글이라는 것이 써지면 그만이고, 기록할 수 있다라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면서 시간이 갈수록 풀어지기는 커녕 더 많은 답답함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새로운 발견을 보고 이것도 재미있군.이라면서 넘겨짚었지만, 그 증세는 나름 심각했다.
대체 글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정말로 글의 끝은 없는 것인가?
읽을 거리가 산더미이고, 쓸 거리도 산더미이다.
구글의 인덱스 페이지가 몇십억 페이지였다고?
(덧붙임)
아, 또 그냥 주절주절거리고 만 글이 되어버렸다..;;킁
(덧붙임2)
가끔 필을 받아서 끄적거리는 것이 아니고, 하루에도 머리 속을 스쳐가는 글들이 너무도 많다.
그런 것들은 모두 스쳐지나간다는 것이 안타깝다.
[까만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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